충남 당진시 신평면에 위치한 원머리성지는 천주교 신앙 유적지로, 조선 시대 순교자의 무덤과 옛 공소 건물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마을의 본래 이름 ‘원머리’는 간척을 위해 제방을 쌓아 놓은 첫머리를 뜻하는 ‘언머리’가 변형된 것이다. 이름에 나타나듯이 원머리는 옛날에는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간척 사업으로 지금은 평야의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로 변했다. 원머리 지역은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가 내포지역에 내려와 복음을 전파하던 초기부터 시작하여 박해시기에 많은 교우들이 피신하여 정착한 곳이며 그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우들과 공소를 중심으로 신앙의 명맥을 이어온 보기드믄 교우촌으로 한국천주교회사를 한눈에 볼수있는 살아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 수용 초기에 왕성했던 원머리 신앙 공동체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 기록에 잘 나타나지 않으나 신자들의 생활은 계속되었다. 이런 기반 위에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1868년까지 16명의 원머리 출신 순교자들이 생겨났고, 그중 6명은 홍주와 해미에서 생매장당해 순교하였다. 이런 박해를 겪으며 완전히 파괴되었던 원머리 공동체는 1880년대에 이르러 되살아났다. 박해 중 피난했던 신자들이 되돌아오고, 적극적인 선교 활동이 이어져 나중에는 신자들이 마을을 주도하는 형태로 변모하였다. 원머리와 주변 지역은 성장을 거듭하여 신평 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를 이루었기에 1975년 신평 성당이 설립될 때 중심 역할을 하였다. 원머리성지의 신앙 유산 중 가장 중요한 유산은 순교자들의 무덤이다. 1868년 수원에서 순교한 박선진[세례명 마르코]과 박태진[세례명 마티아]은 시신이 수습되어 원머리에 묻혔고, 밀양 박씨 집안에서 대를 이어 묘를 관리함으로써 오늘에 이르렀다. 박선진·박태진의 묘소는 1989년 신평 성당 구내로 이장되었다가 20년 후인 2009년에 다시 원머리로 옮겨졌다. 그 사이 원머리 묘역에는 순교자 유해가 없었음에도 빈 무덤을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형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신평 원머리 성지와 그 인근 지역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물게 역사적인 공소들[원머리, 새터, 음섬]이 밀집되어 있고, 강당 건물도 보존되어 있어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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