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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하는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마흔번째 순례지-연풍 순교 성지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by 작은 기쁨 2018. 4.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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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순교성지는 1791년(정조 15년) 신해박해로 연풍지역으로 피신해 은거하던 가톨릭 교인 추순옥()·이윤일()·김병숙·김말당·김마루 등이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때 처형당한 자리이다. 

괴산읍에서 연풍, 문경 방면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고, 문경새재 서쪽 기슭의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연풍면은 소백산맥 산릉에 속한 험지여서 예로부터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은신처를 찾는 순교자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어 일찍이 신도촌이 형성되어 왔다. 연풍의 산간 지역은 신앙을 지키려는 선조들이 문경 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경상도로 피신하는 길목이 되었다. 그들은 연풍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렸고,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고개를 넘는 순간에도 틈틈이 기도를 바치곤 했다.
최양업(토마스) 신부님과 프랑스 선교사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님도 연풍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교우촌을 순방했다. 그럴 때면 신부님들은 연풍 골짜기에 숨어살던 교우들을 방문하여 비밀리에 성사를 주었다. 특히 최양업 신부는 1849년부터 12년간 새재를 넘나들며 이지역에 신앙의 꽃을 피우다가 선종하여 새재의 연봉인 배론 신학당 뒷산에 묻혔다. 이렇듯이 연풍은 경상도와 충청도의 신앙을 잇는 교차로가 되었고, 신앙 선조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수많은 교우들이 이곳에서 체포되어 순교의 길을 걷게된다.

연풍 병방골(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은 황석두 루가(1813~1866) 성인의 고향이다.
그리고 연풍 성지는 성인의 묘소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성인은, 부친께서 천주학을 버리든지 작두날에 목을 맡기든지 하라고 강요하자 결코 진리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작두날에 목을 디밀었다. 이후 성인은 아내와 동정 부부로 살면서 일생을 교회에 헌신하셨다. 그러다가 병인박해 때 다블뤼(안돈이 안토니오) 주교, 오메트르(오 베드로)와 위앵(민 루가) 신부, 장주기(요셉) 회장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성인의 시신은 갈매못에서 홍산 삽티(부여군 홍산면 상천리)를 거쳐 고향 병방골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오랜 노력의 결과 1979년에는 그 묘소가 발견되어 3년 뒤 연풍 성지로 천묘되었다.

대성당과 소성당이 나란히 붙어있는 성 황석두 루카 탄생 200주년 기념성당

오른쪽이 소성당이다.

성지둘레 담장에 김홍도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어 왜 그런가 궁금했는데 김홍도가 연풍현감으로 있을때 거닐던 길이라

이렇게 꾸민것이라고 설명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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